HD역사스페셜 - 고구려 수당전쟁 2편 당태종, 안시성에서 무릎 꿇다

- 전쟁영웅 당태종이 후회한 단 하나의 전투, 고구려전!
수나라 패전의 쓰라림을 알고 있던 당태종이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감행한 고구려원정! 강제징집된 군사가 아닌 자발적 전쟁참가로 구성한 사기충전한 군대! 대전략가 이정의 전술 지휘!
당차, 포석차등의 파괴적인 무기 동원! 과연 당태종은 고구려를 멸망시킬것인가?
그러나 이번에도 고구려원정은 실패로 돌아간다. 또한 단순히 패배한 것이 아니라 도하장비도 이미 불 태워버린 상태에서 굳이 늪지대인 요택을 건너 회군하다 수많은 병사들이 젖어서 죽게 된다. 당태종은 “위징(직언과 극간을 서슴지 않았던 시중)이 만일 있었다면 나로 하여금 이 원정을 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며 후회했다고 한다.
그가 군을 돌려 유성에 도착해서 전사자의 해골을 모아 단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는데 태종이 가슴 아프게 울자 병사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는 기록도 있는데...

- 주필산전투의 미스터리, 고구려는 참패했나?
당태종의 원정군은 건안성, 개모성, 비사성, 요동성등을 연이어 함락시키며 고구려를 압박해온다. 이제 안시성이 함락되면 당군은 곧바로 평양으로 진격할 상황! 안시성을 지키기 위한 고구려의 운명을 건 전투가 주필산 앞에서 벌어지는데...
중국사서는 이 주필산전투에서 안시성을 구하러 온 고구려 구원군 15만 명이 당나라군에 참패를 당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당나라 말기의 유속의 [수당가화]라는 글에는 다른 정황이 기록돼있다.

“주필산전투에서 고구려와 말갈을 합친 군대가 4방 10리에 뻗쳐 있었다. 태종이 이를 바라보고 두려워하는 기색이 있었다.”

“주필산전투에서 고구려군이 당의 6군에게 거의 승리를 거두려하자 태종이 이세적의 깃발, 흑기를 살펴보라고 명했다. 척후가 고하기를 흑기가 포위되었다고 하니 당태종은 크게 두려워하였다.”

- 당태종의 패배를 감추려는 역사조작의 가능성은 없는가?
[자치통감]은 당태종의 고구려원정으로 ‘군마는 열에 일곱, 여덟이 죽고 원정군은 병사는 2,000명이 죽었다’다고 기록하고 있다. 4만의 고구려인이 목숨을 잃고 당나라군의 군마가 열에 일곱, 여덟이 죽었다면 엄청난 유혈접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당나라 군사가 겨우 2,000명만 죽었을 수가 있을까?
오류가 없기로 소문난 ‘자치통감’조차 당의 참패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고 있다.

- 평양성 함락의 위급상황! 연개소문은 중국본토에서 무엇을 했을까?
안시성 앞에 당나라 대군이 모여들고 안시성을 구원하러 온 고구려 구원군 15만 명은 주필산전투에서 대패했다. 이제 안시성이 함락되면 당나라는 건안성을 치고 일시에 평양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렇게 위급한 상황에 연개소문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신당서]에는 당시 연개소문이 심양에서 전쟁을 지휘하고 있었음을 밝혀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멀리 고비사막에 사신을 보내어 이 전쟁을 국제전으로 확대시키는데...



HD역사스페셜 22회 – 세계전쟁사의 수수께끼, 고구려 수당전쟁 2편
당태종, 안시성에서 무릎 꿇다 (2005.10.7.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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