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더스의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 현실적인 공약인가?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버니 샌더스 후보의 대표적인 공약은 전국민 의료보험(medicare for all)입니다. 현재 65세 이상 인구만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 메디케어를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미국인에게 제공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의료보험 제도의 비효율성 때문에 미국은 ‘아프면 큰일 나는 나라’입니다. 의료비 지출이 전체 GDP의 20%에 이릅니다. 아플 때 제대로 치료를 받으려면 비싼 보험료를 내더라도 보장되지 않는 치료, 약제비가 많아서 가정경제가 파탄에 이르는 일이 부지기수일 만큼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이 문제를 손보는 일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았고, 샌더스의 전국민 의료보험 공약은 샌더스 지지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약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샌더스를 비판하는 이들이 샌더스 후보의 대표적인 ‘무책임한 공약’으로 꼽는 것이 전국민 의료보험입니다. 다양한 민간 보험 가운데 소비자가 원하는 의료보험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보장하는 멀쩡한 자본주의 시장 논리를 부정하는 사회주의자의 발상답다는 색깔론은 차치하더라도, 전국민 의료보험 공약을 시행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드는데 이는 미국의 재정과 부채 수준을 고려할 때 절대로 시행할 수 없다는 거죠.




그러던 중 샌더스 후보가 최근 들어 TV토론과 타운홀 대담 등 기회가 될 때마다 언급하는 의학 저널에 실린 연구논문 한 편이 있습니다. 랜싯(Lancet)이라는 학술지에 실린 논문으로 정부가 전국민의 의료보험을 보장하고 운영하는 ‘전국민 의료보험’이 의료 부문의 비용을 크게 줄여줄 거라는 내용입니다. 오늘은 해당 논문의 초록 요약을 번역하고, 워싱턴포스트에서 논문을 분석해 논문의 전제와 가정, 계산이 정확한지 평가한 기사를 요약해 소개합니다.

지난 2월 15일 자로 랜싯에 게재된 논문의 제목은 “미국 의료보험 개선책에 관하여(Improving the prognosis of health care in the USA)입니다. 대표 저자는 예일대학교 감염병 모델분석센터장 앨리슨 갈바니 교수입니다. 갈바니 교수는 샌더스 후보 캠프의 비상임 고문으로 전국민 의료보험에 관한 정책 자문을 맡아왔고, 보수는 받지 않고 있습니다. 갈바니 교수 외의 저자들은 정치적으로 이 연구에 관해 어떤 이해관계가 얽혀있는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논문 초록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개인이 부담하는 의료비 지출이 가장 큰 나라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인 가운데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이 3700만 명이나 되고, 의료보험의 보장 범위가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도 4100만 명에 이른다. 여기에 이른바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부담적정보험법(ACA, Affordable Care Act)을 폐지하려는 의회의 노력이 성공하면, 의료보험 불평등은 훨씬 심화할 것이다. 반대로 정부가 모든 국민의 의료보험을 보장해주는 전국민 의료보험법은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전국민 의료보험을 도입하면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치료의 범위는 늘리면서 비용은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계산했을 때 우리는 정부가 전국민 의료보험을 보장해 운영하는 방식이 미국 전체 의료비 지출을 13% 줄여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는 2017년 미국 달러화 가치를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매년 4500억 달러, 약 540조 원에 이르는 금액이다. 전국민 의료보험은 고용주와 가계가 의료비와 약값을 분담하도록 한 현재 시스템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운영할 수 있다.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를 도입하면 가장 저소득층 가정이 가장 큰 혜택을 받는다. 또한, 전국민 의료보험을 도입하면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한 사례가 줄어들어 더 많은 환자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 매년 6만 8천여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



기본적으로 저자들은 현재 메디케어에 드는 비용 구조를 전국민 의료보험으로 확대 시행하는 상황에 그대로 적용해 계산을 진행했습니다. 우선 환자가 부담하는 의료비 지출이 연 1000억 달러가량 줄어드는데, 이는 의사와 병원들의 수입이 줄어드는 부분으로, 의료계가 샌더스 후보의 공약에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갈바니 교수와 연구진은 환자가 부담하는 의료비 지출뿐 아니라 그동안 병원이 부담하던 비용도 많이 줄어든다고 주장합니다. 병원들이 현행 제도하에서는 청구하고도 받지 못한 의료비를 받기 위해 보험사들과 끝없는 법리 다툼을 벌이는데, 정부가 보장하는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하에서는 그럴 일이 없고, 그 덕분에 줄일 수 있는 비용이 무려 연 350억 달러에 이른다는 겁니다.

논문에 따르면 막대한 이윤을 챙기는 민간 의료보험 회사들이 필요 없어지면서 절감할 수 있는 행정 비용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보험회사의 기업 운영비, 영업비 등에 보험회사 임원 대부분이 받는 250억 원이 넘는 연봉을 보건복지부 장관 한 명의 (그보다 훨씬 적은) 연봉으로 대체한다면 연 2190억 달러의 비용을 추가로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의료보험을 운영하는 주체인 만큼 제약회사들과 적정한 약값을 놓고 협상을 벌여 줄일 수 있는 의료비가 1800억 달러입니다. 이를 모두 더하면 현재 미국의 의료비 지출이 총 3조 5천억 달러인데,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에서는 총 의료비가 3조 달러로 줄어든다고 논문 저자들은 계산했습니다.

저자들은 정부가 전국민 의료보험을 운영하기 위해 마련해야 할 재원을 7730억 달러로 계산했습니다. 이 가운데 4360억 달러는 법인에 10% 급여세를 부과해 마련할 수 있습니다. 10%는 분명 대단히 높은 세율이지만, 저자들은 현재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직장 의료보험을 제공해줘야 하는 의무에 따라 이미 급여의 12%에 해당하는 의료비를 지출하고 있으므로, 오히려 기업과 고용주가 지는 부담이 연간 1000억 달러 정도 줄어든다고 밝혔습니다.

전국민 의료보험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재원 가운데 나머지는 가계소득세 5%로 3750억 달러를 조달하면 된다고 저자들은 설명했습니다. 가계소득세 5%도 적잖은 돈이지만, 저자들은 마찬가지로 민간보험이 정부가 보장하는 전국민 의료보험으로 대체되면 개인이 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내야 하는 치료비 등이 크게 줄어든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 결과 가계별로 연평균 소득이 2000달러 늘어나는 효과를 고려하면 5% 세금을 내도 가계의 소득이 늘어나는 셈이라는 겁니다.



갈바니 교수 연구팀이 계산한 전국민 의료보험 비용 총액 3조 달러는 다른 싱크탱크들의 비용 분석 결과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전국민 의료보험을 시행할 때 미국이 지출하는 의료비 총액을 메르카투스 센터는 3조 8천억 달러, 어반 인스티튜트는 4조 2천억 달러, 그리고 랜드 코포레이션은 3조 9천억 달러로 추산했습니다.

갈바니 교수 연구팀은 이렇게 비용 추산이 크게 다른 이유에 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전국민 의료보험이 시행됐을 때 의료비를 어떻게 분담할지, 환자들이 새로운 제도가 도입됐을 때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할지에 대한 가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의료진과 병원이 아낄 수 있는 행정 비용이 얼마나 될지, 많은 사람이 새로운 제도하에서 보장되는 의료 서비스를 실제로 이용하려고 할지, 정부가 보장하는 전국민 의료보험이 의료 관련 사기를 더 잘 예방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한 예측과 판단이 다른 겁니다.

이는 사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부분입니다. 자연히 다른 의견에 따라 비용에 대한 분석, 나아가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에 대한 찬반이 갈립니다. 시행하지 않은 제도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될지 미래를 내다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다만 미국의 현행 의료제도를 다른 나라의 의료제도와 비교해볼 수는 있겠죠. 다른 부유한 나라 또는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미국인은 의료제도 때문에 건강하지 못할 확률이 더 높고, 예방할 수 있는 질병으로 사망할 확률도 더 높습니다. 영아 사망률, 산모의 사망률이 다른 선진국보다 높고, 이는 자연히 낮은 기대수명으로 이어집니다.

전국민 의료보험이 없다는 건 곧 가난한 사람은 정기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미국인의 1/4은 너무 비싼 의료비 때문에 병원에 가야 할 만큼 아플 때도 병원에 가지 않습니다. 너무 비싼 병원비나 약값, 수술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돈을 마련하고자 다른 이에게 호소한 미국인만 800만 명이 넘습니다. 미국인 다섯 명 중 한 명은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 올린 딱한 사연을 읽고 남의 의료비를 대는 데 돈을 보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크라우드펀딩의 90%는 목표한 금액을 모으지 못했고, 환자는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갈바니 교수가 현행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 점도 이 부분입니다. 전국민 의료보험을 도입해야 하는 윤리적 당위성을 강조한 거죠. 아픈데 돈이 없어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상황은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지 않은 사회라는 겁니다. 전국민 의료보험을 도입하면 매년 6만 9천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갈바니 교수는 “어느 직장에 다니는지, 돈이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목숨이 오가는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가 결정되는 지금 제도는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Christopher Ingra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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