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추적 – 문무왕 비문의 비밀 2부_왜 흉노의 후예라고 밝혔나?

비문 속 주인공 투후 김일제와 성한왕은 어떤 관계인가?
투후 김일제의 나라 투국은 과연 존재했는가?
흉노족은 정말 한반도 남단으로 내려왔는가?
과연 수수께끼 같은 문무왕 비문의 비밀은 풀릴 것인가?

- 투후 김일제와 성한왕은 어떤 관계인가?
문무왕 비문에는 ‘투후 제천지윤 전7엽’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여기서 ‘투후제천지윤’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투후의 자손이라는 뜻.
그리고 ‘7엽’은 일곱 개의 잎사귀, 즉 7대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투후 김일제’의 자손이 7대를 전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이어 15대조 성한왕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김일제의 7대손이 성환왕이라는 이야기일까?
문무왕의 15대조는 김알지의 아들 세한이다. 추사 김정희가 비문의 내용을 집대성한 [해동비고]에 보면 문무왕 비문에 기록된 성한왕은 바로 ‘김알지’라는 기록이 나온다. 비문의 성한왕에 대한 묘사는 김알지 설화와 거의 동일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래서 성한왕은 바로 신라 김 씨 시조 김알지를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 투후 김일제의 나라 투국은 실존했나?
중국에서 김(金)씨는 흉노계를 상징하는 성씨와 같다. 중국의 김씨는 대부분 투후 김일제를 시조로 모시는 흉노족. 산동성 하택시 성무현 옥화묘촌 입구에는 이곳이 김일제의 투국이었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었다.
투국성 유적지에는 김일제를 기리던 투후사가 있었다고 한다. 또 이곳 주민들은 투국성을 김성(金成), 금성이라고 한다. 조림사업이 시작되면서 숲으로 바뀐 이 일대 지하에 투후국의 흉노족이 ‘금성’이라 부르던 성이 있었다.
김일제의 성을 딴 투후국 ‘금성’과 신라 수도 ‘금성’ 두 이름이 일치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 신라는 이주민이 세운 나라?
 왕망이 세운 신나라에서 사용되던 청동제 동전 ‘화천’이 출토된다.
이것이 발견된 지역은 중국에서 한반도 서남해안을 거쳐 일본에 이르는 무역로와 거의 일치한다. 중국 왕망의 난에 가담했던 투후 김일제의 자손들은 왕망의 피살과 함께 뿔뿔이 흩어진다. 삼국사기나 삼국지 위지동이전 등 역사서에는 대륙의 정세가 급변할 때마다 북방의 이주민이 한반도 남단 진한 땅으로 이주해왔다는 기록이 여럿 등장한다. 그렇다면 투후 김일제의 자손들도 신라로 이주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 흉노의 후손임을 선언하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 대당전쟁마저 승리한 문무왕. 그의 비문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석탈해가 사라지고 성한왕 만 존재한다. 신라는 이제 김씨 단독 왕국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바로 문무왕 비문인 셈이다.
신라 김씨왕족의 자신감은 신라김씨 시조 성한왕과 더불어 흉노 태자 투후 김일제까지 자신들의 뿌리가 닿음을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문무왕 비문은 신라 김씨가 한반도의 패자로 성장해간 비밀을 담고 있는 고대사의 블랙박스였다.



역사추적 2회 문무왕 비문의 비밀 2부
– 왜 흉노의 후예라고 밝혔나 (2008.11.29.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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